[Text]안소연. “좋은 이미지, 나쁜 이미지, 이상한 이미지”,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Hot Rookies 전시도록>2013.09. pp. 89-92. [PDF]

 2013 제7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 Discourse & Criticism   

좋은 이미지, 나쁜 이미지, 이상한 이미지_유의정        

    

안소연 | 미술비평 


제7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전 [핫 루키스: 역설의 미학 HOT ROOKIES: Paradoxical Aesthetics]에서 유의정의 작업은 전시의 부제가 함축하고 있는 “역설” 을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잘 꾸며진 상품 매장을 연상시키는 핑크빛 공간에 유의 정은 화려한 상품 이미지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언뜻 워홀(Andy Warhol)의 기계 적인 방법으로 재생산된 상품 이미지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완벽하게 표면적인 이 상 품 기호들은 깊이가 결여된 듯 피상적이기까지 하다. 모더니즘 미술사가 그린버그 (Clement Greenberg)는 “표면”과 “깊이”를 구분해서, 워홀을 염두에 두고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팝아트의 표면성을 나쁜 예술로 정의했다. 그는 소위 고급 예술이라고 하는 좋은 예술에 대한 모더니즘의 신념을 “깊이 없는 표면” 보다 “표면 아래의 깊 이”에서 찾았다. 반면 토마스 크로우(Thomas Crow)는 그린버그와 달리, 무감각한 워홀의 표면에서 사회 정치적인 맥락을 지닌 심층적 의미를 발견해냈다. 이러한 대립 되는 사유의 연속에서, 다시 유의정의 작품으로 되돌아 가본다. 그의 작업도 과도하게 복제된 상품 이미지와 기호들, 기계적인 재생산 방식, 거기에 전통적 재료에 대한 본 질적 의미 추구가 뒤엉켜 “좋음”과 “나쁨”의 차이를 흐리고 있다. 때문에 얼핏 규정 하기 힘든 그 “이상한” 표면에 좀 더 주목하기 위해, 유의정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 특징들을 나열해보기로 한다.     [공허한 모방] 유의정의 <기록 Archive>(2007-2013)은 자신의 작업 전반을 소개하는 진열장에 가 깝다.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매우 익숙한 상품 이미지와 기호들을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 로고, 스포츠 브랜드 로고,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각종 상품 로고와 이미지들이 즐비하다. 그런가하면, 곳곳에 세워둔 도자기와 전통 문양들, 미니 어처 고대 조각상 등이 마치 어떤 복선처럼 앞서 언급한 이미지들 속에 종종 뒤섞여 있다. 이렇듯 7년 여 동안 지속적으로 유의정이 주목했던 것은 “모방”에 가까운 이미 지의 “복사”라 할 수 있다. 워홀에 빗댄다면, 이미지의 “재생산”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언뜻 상감기법을 비롯한 전통 도예 기법으로 제작된 듯한 이 상품 이미지들과 로고들은, 사실 전통 도자 제작 방식과 산업 도자 기법(전사 및 캐스팅)을 모두 이 용해 이질성과 혼성성을 한껏 가중시킨다. 부재하는 대상으로써의 상징적 기호들과 클리셰처럼 확고하게 굳어버린 일상 용품의 이미지들에 대한 작가의 의심에서 비롯 된 이 연작들에서, 그는 전통이 유물화 되는 과정을 소비 상품 이미지의 생산 과정 과 병치시켰다. 유의정은 전통적인 재료로 일상의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단적인 예 로, 상감기법으로 제작해 벽에 붙인 나이키 로고는 <청자 상감운학문 나이키>로, 아디다스 로고는 <청자 상감모란문 아디다스>로 이름 붙여 전통 도자의 재료 및 문양을 상품 이미지가 지닌 소비사회의 기호와 한데 뒤섞었다. 워홀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끝없이 재생산되는 상품 이미지의 기호를 흉내냈던 것 과 달리, 유의정은 소위 고급예술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대중 소비문화의 이미지를 재 생산했다. 도예를 전공한 유의정은 도예 테크닉에 상당히 능하다. 재료와 기법 뿐 아 니라, 도예가 갖고 있는 전통적 위상과 상징성에 누구보다 근접해 있다. 하지만, 이 젊은 “도예가”는 “명장(master)”이 되기 위한 전통의 규범과는 살짝 빗겨 서서 오히 려 그 규범의 경계를 전략적으로 다룬다. 그는 유물이 진열되는 방식에 착안해 제시 된 형태들이 더 확고한 의미와 이미지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을 증명해 보고 싶었을 테지만, 동시에 상품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텅 빈 표면에 대한 집착 또한 강하게 드러 냈다. 그렇다면, 작가가 쫓고 있는 표면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유의정은 작품을 통해 수 많은 상징적 기호들을 교차시키기 때문에 적잖은 오해의 시선을 받게 된다. 특정 문 화에 대한 반감 내지는 전통적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 만 그의 작업은 공허한 상징들을 중립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패스티쉬(pastiche)”에 더 가깝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자신의 글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 사회」에서 과거의 고급문화와 소위 대중문화 혹은 통속문화 사이에 존재하던 구분을 사라지게 하는데 있어서 “패러디”와 “패스티쉬” 개념을 중요하게 비교하면서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패스티쉬는 특정한 스타일에 대한 모방이지만, 스타일 상의 가면을 쓰는 것이며 죽은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모방을 중성적으로 수 행하는 공허한 패러디와 같으며, 스타일상의 다양함과 이질성의 만남을 특징으로 한 다. 유의정은 동시대 대중적 아이콘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품 이미지들과 전통적 패턴 및 상품을 작품에 교차시킨다. 하지만 그 경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 과도한 혼성적 이미지들은 결과적으로 공허한 표면성을 극대화하게 된다. 유의정은 플라스틱 가방, 장난감, 돼지저금통, 페트병 등 일상의 물건들을 도자로 유물화하여 자신의 소 장품 목록을 만들어 보고자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도자들은 결코 유물을 똑같 이 흉내 낼 수 없다. 심지어는 더 이상 기호로써의 상품 이미지 또한 고스란히 담아 낼 수는 없다. 전형적인 스타일들을 모방하고, 그 가면을 제아무리 뒤집어쓰고, 그 목 소리를 비슷하게 흉내 낸다 하더라도 이질적으로 혼성된 이미지들은 제임슨의 말처럼 “공허”해 보인다. 이렇듯 그에게 “차이를 없애려는 것과 무관심해지려는 노력이 방어 기제로 작동” 되었을 가능성은 크다. 이는 마치 브래드포드 콜린스가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예로 들면서, 표면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에 대해 설명했던 바와 비슷하다. 표면과 깊 이, 색채와 형태, 구상과 추상, 기계와 수공방식 사이의 해결되지 않는 긴장감이 바로 - 2 텅 빈 표면과 흉내 내기 전략을 통해 새어나오는 듯하다. [깊이가 투사된 표면] 전시장 벽에 배치한 작품 <기록> 앞에는, “정체불명의” 세 개의 커다란 “항아리”가 바닥보다 조금 높은 좌대 위에 설치돼 있다. <시대착오 Anachronism>(2012), <우리 것에 대하여 Home Grown>(2012), <문학 연구 Literature-Without me>(2012)에는 문자, 도상, 문양, 기호, 사물 등으로 결합된 혼성적 이미지들이 시각적으로 과도하게 축적되어 있다. <시대착오>에 대한 전시도록의 설명도 작품에 나타난 혼성적 이미지 에 주목하고 있다. 작품의 맨 꼭대기에는 군복 문양으로 얼굴을 분장한 빅보이 캐릭터가 올라가 있고, 그 아래에는 청동과 구리로 제작된 비너스와 호머상이, 그리고 작품 전체에는 금색별과 한자, 영어, 그리고 키치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작품에서 항아리는 과 거․전통에 대한 상징이며, 그 위에 장식된 복잡한 조합들은 현대문명의 하이브리드적 인 속성들을 나타낸다. 작품에 나타난 이러한 혼성적인 이미지들은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1980-90년대 한국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시기 한국은 급속한 산업 화와 현대화의 과정 속에 있었으며, 시대와 지역, 문화와 장르가 혼재되어 매우 혼란 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이러한 이미지의 혼재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며, 변화하고 있 는 현대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찰한 결과물이다. ([핫 루키스: 역설의 미학] 전시 도록에서 인용) 하지만 80년대생 작가 유의정에게 한국사회의 산업화와 현대화 과정에서 파생됐던 정체성의 혼란은 크게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1990년대부터 가속화 된 세계 화의 흐름 이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수혜를 입은 젊은 작가들의 입지 속에서 그 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분법의 경계를 탐색하는 동시대미술의 행렬에 유연하게 대처했 다. 일반적으로 실재를 뒤덮은 듯 과도한 이미지들이 반복되는 워홀의 표면은 텅 비고 심지어 작품의 깊이는 그 어떤 여지도 없이 완전히 차단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얇은 표면 아래 숨겨져 있는 깊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 표적으로 아서 단토와 토마스 크로우는 워홀의 무감각한 이미지 표면에 투사된 철학 적․정치적․심리적인 깊이를 읽어냈다. 마찬가지로 유의정의 인체를 닮은 듯 수직적으 로 구축된 도자기들과 그 표면에 봉합된 과도한 상품 이미지와 전통적인 기호가 뒤섞 인 혼성적 이미지들은 공예와 순수미술,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에 대한 오래된 질문 까지 환기시킨다. 또한 우리의 인식과 사유, 사회, 국가, 세계를 지배하는 기호와 이 미지에 대한 사회․정치적 접근까지 유효하게 한다. 유의정의 작업은 “도예와 조각”, “표면과 깊이”, “전통과 현대”에 대한 이분법적 잣대를 공격한다. 따라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애매하고 모호한 경계에서 우리 가 지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 경직된 틈을 좀 더 유연하게 넓히 고자 그는 나름의 명분을 그 표면에 투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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